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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최악의 일

내가 인스타그램을 두 달동안 하지 않았던 이유

이 글은 영문으로도 작성될 예정입니다.

코로나19, n번방 사건 등 사회적으로 우울한 일들이 많은 가운데 개인적으로도 힘든 일이 있었다. 2020년은 반복되는 일과 속에서 평화로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는데.

노트북이 고장나서 바탕화면에 있던 자료가 다 날라갔다. (2월 초)

…여기까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데이터 복구를 하면 되니까. 돈은 좀 깨지겠지만 당연히 고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복구가 불가능하다는 판결을 받았다. (3일 전)

나는 대부분의 최신 노트북에 들어 있는 SSD가 그렇게 취약한지 몰랐다. 복구 센터에서는 전세계에서 최고 기술을 가진 러시아 업체에서도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일말의 희망까지 앗아갔다.

…물론 나는 원드라이브에 자료를 저장한다. 그래서 잃은 데이터는 바탕화면에 있는 데이터 뿐이다. 하지만

바탕화면에는 2019년 여행 사진들과 그외 중요한 프로젝트 자료들이 있었다.

자, 어떤 멍청이가 중요한 자료를 바탕화면에 저장해? 그건 순전히 내 정리 강박증 때문이다. 나는 원드라이브에 내가 설계한 파일 분류 시스템에 맞게 파일을 저장한다. 특히 사진은 더 엄격하게 라벨링하고 정리한다. 안 그러면 카카오톡으로 받은 사진, 카메라로 찍은 사진, 캡처한 사진, 폰으로 찍은 사진 등등이 뒤섞이기 때문임. 근데 2019년 하반기는 정말 미친듯이 바빴다. 그래서 나는 아직 분류하고 정리하지 않은 사진들(대부분 해외 여행, 중요 행사)은 아직 내 드라이브에 넣을 수 없는 ‘임시 파일’로 분류했고, 내 임시 파일의 위치는 바탕화면이었다 …..

혹시 내 노트북이 고장나거나 노트북을 분실해서 이 중요한 정보를 몽땅 잃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한걸까? 안타깝게도 그런 것 같다. 3년 넘게 쓰면서 멀쩡했던 그램을 너무 믿어부렀다. 아무 문제도 없다가 1월 어느날 갑자기 노트북이 켜지지 않았다. 센터 말이 SSD는 반도체라서 언제든지 그럴 수 있고 원인은 알 수 없다고 한다.

이 글을 두달 전에 봤었다면…

 

이것 때문에 하루종일 울 수도 있어

데이터복구 센터에서는 드라이브를 맡길 때부터 이미 어려울 것이라는 말을 했고, 중간에도 전화해서 거의 가망이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2월초부터 지금까지 마음 속에 불안함이 가라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휘저으면 가라앉은게 올라올 것 같아 생각 안 하고 있다가 3일 전 최종 통보를 받고는 너무 우울했다. 차라리 내가 돈을 잃어버려도 이만큼 슬프지는 않을 것 같다. 데이터 복구에 성공하면 60만원을 내기로 했었는데 이 손해는 60만원을 훨씬 넘는다.

남자친구한테 보냈던 메시지

이 이야기를 딱 세명한테 했는데 그 세명한테 공통적으로 한 말이 “I can cry all day for this(이것 가지고 하루종일 울 수도 있어)”였다. 정말 하루종일 울 수도 있는데 안 하는 것 뿐이다. 현생이 있으니까. 하루종일 울고 싶은 마음으로 해야할 일을 한다… 인턴 업무를 하고 프로젝트를 한다.

 

살면서 가장 다채로웠던 2019년

솔직히 창업 관련 문서나 기타 프로젝트 서류는 아주 치명적인 자료는 아니었다. 슬픈 이유의 99%는 다시 볼 수 없는 사진이랑 영상이다. 왜냐면 2019년은 내가 살면서 가장 많은 것을 이루고 다채롭게 살았던 시간이기 때문이다.

상반기에는 임시정부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며 중국 임시정부를 다녀오는 영광이 있었고, 아데코 CEOfor1month에서 Finalist까지 올라가고, 미국 대학생 친구들과 2주간 한국에서 프로젝트를 하고, 처음으로 혼자서 해외 여행을 다녀왔다. 하반기에는 지금껏 만난 사람들 중 가장 멋진 팀원들과 싱가포르에 캠프를 다녀왔고, 경영 학회에서 너무 하고싶었던 사회자를 맡았고, 교환학생 몇 백 명 앞에서 아이디어를 피칭하고, 우리은행에서 우리 창업 팀 영상을 찍고, 외국인 친구들 팀원들이 생겨 함께 앱을 만들었고, 거기서 멋진 남자친구를 만났고, 대구에서 열린 행사에 다녀오고, 스타트업 대표로써 중국 산업혁명 탐방을 다녀오고, 대만으로 디자인 씽킹 워크샵을 다녀왔고, 우수 글로벌 버디로 선정되었다.

그래서 이 모든 사진과 영상을 잃은 걸 상상해보라. 정확히 하자면 SD카드랑 구글 포토에 일부가 저장되어 있으니 위에서 70%를 잃어버렸다. 특히 마이클이 귀국하기 전에 함께 보낸 12월의 추억들을 생각하면 살짝 죽고 싶은 기분이다.

 

이 모든 것의 근본적인 원인

무엇보다 내가 내 자신에게 미칠듯이 화가 나는 이유는 바탕화면에 자료를 저장했기 때문이 아니다. 미루고 미뤘기 때문이다. 이 소중한 기억들에 관해서 사진을 정리하는걸 미뤘고, 블로그에 포스팅하는걸 미뤘고, 인스타에 업로드하는걸 미뤘다. 다 그놈의 완벽주의 때문에. 완벽하게 정리하고 좋은 퀄리티여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작부터 엄두를 못 냈다. 그렇게 1년치의 자료가 바탕화면의 ‘임시’ 폴더 안에 방치되어 있었다. 1년동안 할일 리스트에 ‘사진 정리’가 있었다. 내 주변 사람들은 알텐데 “나 이번 일정 동영상으로 만들거야!”하고 만들지 않고 있는게 몇 개인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 고통스러운 감정과 절실한 깨달음을 ‘지금’ 글로 쓴다. “데이터 잃어버린 것에 대한 블로그 글쓰기”로 할일 리스트에 추가하지 않는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메모하지도 않는다. 그냥 지금 쓴다.

그리고 몇가지 다짐:

1. 파일 정리에 집착하지 말 것 – 나는 너무 많은 시간을 혼자서만 볼 내용을 정리하는 데 썼다.

2. 완벽주의를 버릴 것 – 완벽하게 준비될 때를 기다리다가 인생이 다 간다.

3. 미루지 않을 것 – 100개의 일을 하려면 결국 1번부터 시작하는 방법밖에 없다.

4. 바탕화면도 원드라이브에 백업하기(궁서체)

 

그래서 인스타그램은 왜 안했냐면

1) 나는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고 따라서 해야 할 일도 많다. 그리고 완벽하게 하고 싶어서 미루고 있는 일들도 많다(1년동안 할일 리스트에 ‘사진 정리’가 있다는걸 언급했었나?). 그러다보니 365일 24시간 내내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느끼면서 살아간다. ‘지금은 놀아도 될 때’라는 느낌을 받은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가장 친한 친구에게조차도 내가 먼저 놀자고 연락하는 일이 없다. 이건 내가 노는 걸 싫어하는게 아니라 항상 내 일더미에 파묻혀서 준비가 안 된 느낌이기 때문이다. 한 학기 내내 SETA 뒤풀이에 거의 안 갔던 것도 이것 때문이다.

2) 그리고 나는 내가 너무 중요하다. 내 머릿속은 하고 싶은 일과 프로젝트 구상으로 항상 가득해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별로 궁금하지 않다. 이 말은 내가 주위 사람들을 챙기는 데에 서툴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이 두가지가 전혀 자랑스럽지 않고 내 단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으며 고치려고 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뭐하는지 궁금한 사람들, 수다떨고 싶은 사람들은 많다.

근데 2월 초부터 지금까지 이 데이터 문제로 이 ‘준비되지 않은 느낌’이 더욱 심해졌다. 멀쩡하게 하루 일과를 하면서도 계속 불안했다. 내 노트북은 나에게 세계를 의미한다. 노트북이 포맷되어서 다시 기본 세팅을 하고 시스템을 정비하면서 항상 할일로 가득했다. 인스타그램은 두 달동안 두 세번 정도 들어갔는데 내 스토리(코로나, n번방 관련)만 올리고 바로 나왔다. 내 피드도 초기화하고 카톡도 프사 다 내리고 그냥 조용히 잊혀지고 싶었다.

여기서 인스타그램은 그냥 SNS가 아니라 ‘사회와의 소통’을 상징한다. 그간 나는 사회적으로 단절되어 있었다. 친구들에게는 미안하다는 말을 전한다. 내가 나도 못 챙겨서 그랬다. 코로나19처럼 크나큰 고통에 비하면 사소한 개인적 위기Personal crisis라서 말하기도 좀 그랬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많은 사람들이 이해 못 할 것 같다(사진 날라간게 이렇게 슬플 일인가? 하고). 나는 사진이랑 추억에 살짝 목숨 거는 타입이고 글쓰고 영상 만드는게 낙인 사람이라 어쩔 수 없다. 어제 오랜만에 인스타그램을 다시 들어가서 받은 몇몇 친구들의 “어떻게 지내?”라는 DM에 이 글로 대답한다. 앞으로 내가 이 우울에서 조금씩 회복했으면 좋겠다.

 

P.S. 이 글을 보는 당신 지금 바로 SSD를 백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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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주
류승주
6 months ago

 o(TヘTo).. 언니 힘내요!! 언니 홈페이지 처음 들어와봤네요 넘 멋있어요 앞으로도 종종 찾아와도되죠?? ㅎㅎ

김민재
김민재
6 months ago

소희야! 우연히 들어와봤는데 되게 글 좋다:)
안타까운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ㅠ 종종 들릴게!

박병훈
박병훈
6 months ago

구글 학교계정이 무제한이니… 임시공간으로 뒤늦게 추천… 데이터들은 평화와 0속에서 잠드시길…
여기 즐겨찾기 추가할게요…

김양숙
김양숙
6 months ago

그 심정이해간다 어떡해 .. 우리한테 카톡으로보낸 사진 몇장은 다시가져올수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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